라이덴 병의 역사
라이덴병은 다소 불공평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장된 전기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정작 그 이름을 짓는 데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발트 G. 폰 클라이스트는 우연히 이 현상을 발견했다. 1745년 11월 4일 전기를 실험하던 중, 그의 발전기가 코르크 마개에 꽂힌 못과 접촉했고, 얼마 후 그 못을 만졌을 때 그는 전기 충격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현상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고, 그 과정을 시험하고 기록할 기회는 네덜란드 라이덴의 피터 판 뮈스헨브루크에게 돌아갔다.
1년 후 뮈스헨브루크는 금속 막대를 넣은 물병을 가져와 정전기 발생기로 접촉시켰다. 조수가 막대를 만져 충격을 받을 때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전하가 저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최초의 축전기가 발명되었다.
“뮈스헨브루크는 병을 충전한 후 처음으로 전선을 만졌을 때 일어난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갑자기 오른손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뮈스헨브루크는 이어서 자신의 병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내놓았고, 무분별한 자가 실험이 성행하던 시대에 유럽과 아메리카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곧 코피, 어지럼증, 그리고 일부는 심장마비처럼 느껴지는 증상을 겪으며 실험에 나섰다,” ScienceHistory.org는 기록하고 있다.
“판 뮈스헨브루크는 운이 좋게도 그의 발견 소식이 유럽 전역, 그리고 이어서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라이덴병은 전기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위키피디아는 설명하고있다.
라이덴병의 초기 장점 중 하나는 정전기 발생기보다 훨씬 간단하게 운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연 실험에서 라이덴병을 사용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라이덴병을 충전한 뒤 전기를 실험 장소까지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백 년 후, 라이덴병은 전기 조명, 라디오를 비롯한 세상을 바꾼 수많은 응용 기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소형화를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축전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발전했다. 프랭클린은 여러 개의 병을 연결하여 이를 “배터리”라고 불렀다(다만 이후 이 용어가 사용된 방식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실제로 1790년대에 이탈리아 동료 과학자 루이지 갈바니와의 논쟁을 해결하려던 알레산드로 볼타가 최초의 진정한 배터리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저장된 전기는 초기 라이덴병의 일회성 사용과 달리 일정 기간에 걸쳐 일을 수행하는 데 사용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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